2024.05.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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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두 얼굴 – 미성년 파산을 아십니까 <시사직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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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개월 아기에게 아빠 빚이?

 

“엄마 젖도 못 물어봤는데, 

저 어린 아기에게 빚이 넘어간다니 말이 돼요?“

 -27개월 은지(가명) 고모할머니

 

 ”하나 둘 셋“ 이제 막 숫자놀이와 책 읽기에 푹 빠진 27개월 은지(가명). 또래보다 말도 빠르고 영특한 은지를 키우고 있는 고모할머니는 요즘 은지 재롱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민다. 두 달 전, 개인파산 신청 중이었던 은지 아빠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아빠의 빚이 은지에게 상속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고모할머니는 백방으로 은지의 빚 상속을 막을 방법을 찾아보고 있지만, 돌아오는 답은 ‘지금으로서는 어렵다’. 친권이 없는 고모할머니는 은지를 대신해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재산 범위 내에서 빚 감당)절차를 밟아 줄 수도, 간단한 기본증명서 한 장도 뗄 수 없는 처지다. 

 

 

 

■ 엄마, 아빠의 방임이나 실수도 아이가 책임져라 -미성년자에게 빚 지우는 이상한 상속법

 

 의사가 꿈인 13살 수진(가명)이는 요즘 하루하루가 두렵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엄마의 빚이 자신에게 상속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수진이를 대신해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절차를 밟아줘야 할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도 나 몰라라 하며 연락마저 끊어버렸다. 수진이의 빚을 구제받기 위해서는 방임하고 있는 아버지의 친권상실 소송부터 시작해, 후견인 지정, 한정승인 연장 신청 등 줄줄이 대여섯 개의 소송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성인의 한정승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긴 과정을 거쳐야 하는 미성년자 한정승인. 그 과정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미성년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할머니와 사는 12살 지호(가명)는 몇 달 전부터 기초생활수급이 끊어졌다. 한정승인 절차를 제때 밟지 못해 엄마의 빚이 지호에게 자동 상속됐는데, 엄마 명의로 된 아파트도 함께 넘어왔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처분해도 빚이 더 많은 상황이지만, 복잡한 재산정리와 한정승인까지 지호는 의료보험 혜택도 기초생활지원도 전혀 받을 수 없다. 

 

 

 

■ 한 달에 한 명꼴  -  부모 빚 때문에 파산하는 우리나라 미성년자

 

 2016년부터 5년간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미성년자 파산 건수는 78건으로 한 달에 한 명꼴로 발생한다. 부모의 방임 혹은 잘못으로 인해 부모의 빚이 아직 사회에 첫발조차 떼지 못한 미성년자의 ‘파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상속법 체계가 유사한 프랑스의 경우, 미성년자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속재산 보다 많은 빚이 넘어가지 않도록 법률적으로 원천 차단하고 있다. 프랑스는 별도의 특칙까지 두어, 미성년자의 상속은 한정승인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미성년자가 빚을 지지 않도록, 성인이 된 시점에서 가진 재산에 한 해 빚을 청산하게끔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껏 미성년 보호 입법은 커녕, 미성년 빚 상속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조사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그 어느 해보다 부동산과 주식 등 부의 대물림이 활발해진 요즘, 미성년자의 빚 상속에는 무관심해온 우리 사회의 ‘상속의 이중성’을 시사직격이 짚어본다.  시사직격 96회 < 상속의 두 얼굴 – 미성년 파산을 아십니까 > 편은 11월 5일 금요일 KBS1 밤 10시에 방영한다.

[사진제공=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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